나는 신이다 김기순의 아가동산 사건의 전말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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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미/트렌드

나는 신이다 김기순의 아가동산 사건의 전말과 근황

by ella_song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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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를 통해 사이비 종교들의 악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중 김기순의 아가동산이라는 곳이 알고 보니 신나라레코드를 운영 중이라고 하니 너무 충격이 컸어요. 그래서 이 사이비종교는 어떻게 시작된 건지 현재 근황은 어떤지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목차

  • 1978년 김기순 등장
  • 아가동산은 어떻게 유지되었나?
  • 아가동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칙
  • 세상에 발각된 아가동산
  • 김기순 근황 

아가동산-교주-김기순
아가동산 김기순

 

1978년 김기순 등장

 

김기순은 평범한 주부였지만 항상 출세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이런 꿈을 접고 살다가 이교 부라는 사람이 이끄는 주현교회라는 사이비교회에 빠지게 되었는데, 1979년 폭행사건으로 이교부가 구속되면서 해산됩니다. 

 

해산 후 새로운 시작

이로 인해 주현교회는 해산되고 갈 곳을 잃은 주현교회의 신도들에게 김기순은 이때다 싶어 내가 이교부의 영혼을 계승한 후계자라고 세뇌를 했다고 해요.  이 소리를 믿은 신도들이 김기순을 따르면서 아가동산이 시작되었던 거죠.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데 그 당시 이미 이교부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신도들이 김기순 자신의 주의 재림이며 이교부의 영혼을 이어받았다고 하니 쉽게 넘어간 듯합니다. 

 

아가동산은 어떻게 유지되었나?

 

1982년 아가동산이라는 종교를 만들고 자신을 "아가야"라고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믿게 한 김기순은 아가동산을 지켜야 하니 신도들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신도들은 이로 인해 노동력착취를 당했는데 다양한 노동과 장사, 농사 등을 하며 번 돈을 김기순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거의 쉬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신도들이 일 년에 딱 네 번 쉬는 날이 있었는데요.

바로 신정과 광복절, 크리스마스, 교주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김기순의 생일날 하얀 드레스를 입고 김기순이 마차를 타고 오는 걸까요?

이 장면을 보니 마치 북한의 독재정치가 소규모로 이루어진 집단 같아 보여서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신도들은 평생 월급이라는 개념도 없고, 자신의 통장도 없이 평생 노동착취를 당하고 살아야 했지만 끊임없는 가스라이팅과 세뇌로 아가동산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하네요. 

 

또한,

신도들의 탈주를 막기 위해 외부와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시키고 TV, 신문, 병원 출입도 단절시키고 학업도 중단하게 하여 아가동산 신도들은 고등학교도 진학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병원진료를 하지 않고 뜸과 같은 자연치유를 하게 하는 등 절대적으로 외부와의 유입을 단절시켰어요.

이렇게 다른 이단들과 다르게 전도활동을 하지 않고 감옥처럼 죽노동과 신앙생활만을 했고, 집단에 있는 사건을 다 본인을 위해서 노예화시킨 사건입니다.

 

아가동산의 3금욕 인륜단절, 물질단절, 성욕단절이었습니다. 

김기순은 집회 대마다 죽음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을 알기에 이 일을 한다며 지금은 높은 이자는 못 주지만 입금시킨 돈은 언제든지 필요하다고 하면 돌려주겠다고 하며 신도들을 안심시키고 세뇌시켰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업 신나라레코드

 

이렇게 돈을 모은 김기순은  경기도 이천에 땅 4천 평을 구입해 40평대 집에서 혼자 호의호식하며 살고 신도들은 단칸방에 몰아 살게 했습니다. 그러다 새로 음반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음반사업으로 만 원짜리 현금을 셀 수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벌었다고 하네요.

그 이름이 바로 신나라유통=신나라레코드입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신나라레코드라는 회사는 워낙 유명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요. 이 부분에서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어요;;

 

 

아가동산-피해자-최낙귀
아가동산 사건 피해자 최낙귀어린이

 

아가동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칙

 

1. 인정선 - 가족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사람은 정에 제일 약하기 때문에 엄마를 아줌마로 부르게 하고 부모를 죽이라면 죽일 정도로 자신을 신격화시켰습니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신도가 있으면 같은 신도들끼리 폭행하고 가족들에게 직접 폭행을 하게 했어요.

이 사건의 최대 희생자는 그 당시 만 5세였던 최낙귀어린이입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돼지축사에 알몸으로 묶어 가둬놓고 학대하고 굶기고 때려 죽게 만든 사건이에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이유도 모른 채 어른들에게 학대받다 떠난 5살 아이가 너무 안타까웠고 김기순의 악행이 지금생각해도 역겹습니다.

 

2. 정욕선 - 이성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하느님과의 사랑만 허락하고 부부간이든 남이든 남녀 간의 사랑이나 연애나 비슷한 행동은 바로 엄청난 비극으로 죽거나 죽음 직전의 집단 폭행을 당하며 종놈이나 종년으로 취급되어 이 지구상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없는 인간 이하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 김기순 일지 중 

이런 말을 항상 일삼았던 김기순은 신도들끼리의 결혼, 성욕을 모두 막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강미경입니다. 

김기순이 자신의 아들이 강미경에게 마음을 두자 이것이 신도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자신의 아들에게 꼬리를 쳤다고 거짓말을 해 매질을 하게 만들어 결국 강미경은 매질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강미경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이 목사라는 사람도 김기순에게 세뇌를 당해 자신의 딸이 맞아 죽는 것을 지켜만 봤다고 하네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3. 물질선 - 신도들에게 물욕이 있으면 신나라에서 살 수 없다고 했어요. 신나라는 "신의 나라"라는 뜻으로 그들만의 동산 이름인데 신도들에게 노동을 시켜 착취한 돈으로 땅을 사고 음반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지금의 신나라 뮤직입니다. 

 

세상에 발각된 아가동산

1996년 아가동산에서 탈출한 신도들이 경찰에 탄원서 냈고, 이로 인해 경찰 50여 명이 집회 당일 급습했지만 김기순은 신도들의 도움으로 도주해 버렸습니다. 

 

이후 김기순의 살인사건 등이 세상에 전부 드러났지만 여전히 그를 감싸는 신도들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해요. 

이후 김기순은 당시 유명한 변호사를 대동해 자수를 했지만, 자수하기 직전 살인사건과 관련된 증인과 목격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결국 무죄를 선고받고 56억 원이라는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축척한 김기순은 56억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돌아갔다고 하네요.

 

김기순의 근황

최근에는 아가동산 신도들이 많이 탈퇴를 하고 적은 신도들만 남아 소규모로 운영되고 신나라레코드 사업으로 과거에 돈을 쓸어 담았고, 현재까지도 사업을 운영 중이니 전혀 타격은 없다고 합니다. 

또한 사건의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버려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온라인의 핫트랙스라고 불릴 정도로 핫했던 신나라레코드가 현재까지 운영 중이지만 각 k-팝 소속사들이 손절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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